남부 앨라배마와 조지아 일대의 회사, 특히 수많은 자동차 협력업체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주 흔하게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 저 친구가 OOO의 자녀야", "저분이 OOO 부서에서 일하는 OOO 아빠야" 같은 대화들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현장에서 많이 겪다 보니,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정말 우리 회사는 '가족 회사' 맞네!"라고 흔히 말하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 회사는 한국 뉴스에 오르내리는 '회장님 오너 일가'나 '사장님 친인척 낙하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립 라인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의 부모님, 자녀, 혹은 형제자매를 데려와 함께 일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무도 특혜라며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종종 이슈가 되는 대기업 노조의 고용 세습 논란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고임금 꿀직장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다 보니 엄청난 사회적 비판과 특혜 시비가 붙습니다. 하지만 앨라배마와 조지아 제조업 현장의 현실은 다릅니다. 솔직히 말해 이곳 현장직은 모두가 줄을 서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고임금의 편안한 직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늘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팍팍한 환경에 가깝죠.
그렇다 보니 누군가 자신의 가족이나 형제를 데리고 온다고 해서 주변에서 질투를 하거나 불만을 가지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뢰가 보장된 사람을 기존 직원이 직접 제 발로 데려와 주니, 회사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수밖에 없는 꿀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단,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은 있습니다
아무리 채용이 급하고 반가워도 현장의 질서를 위해 지키는 암묵적인 선이 있습니다. 보통 같은 팀이나 같은 라인으로는 배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다이렉트 매니저가 되거나 나란히 붙어서 일하게 되면, 특혜 시비가 생기고 공정한 업무 평가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부서나 교대조(Shift)를 다르게 배정하는 것이 룰입니다.
이렇게 척박한 구인 환경 속에서 나름의 룰을 지키며 굴러가는 현지인 가족 회사 시스템에는 뚜렷한 장단점이 공존합니다.
현지인 가족 회사의 장점
- 확실한 신뢰와 검증 (HR의 수고 덜기):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근태가 확실한 A급 직원이 자신의 자녀나 친척을 추천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복잡한 배경 조사나 면접 절차보다 훨씬 안심이 됩니다. 입사 전부터 보이지 않는 신뢰가 형성됩니다.
- 채용의 용이성과 빠른 적응: 구인난이 심한 환경에서 기존 직원의 인맥을 통한 채용은 가뭄의 단비와 같습니다. 새로 들어온 가족 역시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가족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어 시스템에 훨씬 빠르게 적응합니다.
- 출퇴근의 안정성: 대중교통이 열악한 남부 특성상, 가족이 다른 팀이더라도 교대조가 겹치면 카풀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차로 같이 출퇴근을 하니 지각이나 결근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갑자기 무단퇴사를 해버리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현지인 가족 회사의 단점
- 뼈아픈 연대 책임과 눈치 ("둘 다 욕먹는 상황"): 가족이 함께 일한다는 것은 곧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자녀가 타 부서에서 불량을 내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비난의 화살은 추천인인 부모에게까지 향합니다. 가족 전체의 평판이 깎이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 시한폭탄 같은 동반 퇴사 리스크: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만약 가족 중 한 명이 회사에 불만을 품거나 관리자와 트러블이 생겨 퇴사를 결심하면, 다른 팀에서 멀쩡히 일 잘하고 있던 남은 가족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 줄지어 동반 퇴사를 해버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 관리의 어려움 (보이지 않는 견제): 같은 팀은 아니더라도, 한 공장 안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리자 입장에서는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신입 직원이 잘못을 해서 지적을 하려 해도, 그 직원의 부모인 직원이 찾아와 불만을 표출하거나 눈빛을 보내면 업무 통솔이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